훈련/양육

목회칼럼

은혜의 색다른 계산법(3)


오랜 세월 후에 사도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격 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은혜의

주도권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다메섹

길바닥에 엎드러진 그는 은혜의 충격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편지에는 두

문장이 채 못 되어 어김없이 은혜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은혜는 바울이 빌어 줄 수

있는 최고의 복이며, 자신이 받은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귀가 따갑도록

은혜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 실상을 알면 사랑을 거두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인한 것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은혜의 파문을 익히 안 바울은 하나님이 인간과 화목케 되신 경위를 밝히는 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우리가 은혜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불의에는 대가가 따라야 된다는

본성 때문입니다. 살인자를 무죄 방면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아동 학대자가 “기분 내키는

대로 했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끝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반론을 예상한

바울은 대가가 이미 하나님 자신에 의해 지불되었음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버리시기보다는 그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 부른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계산법에 평생 놀란 가슴을 갖고 산 사람입니다. 은혜는 예수님께서

친히 그 몸으로 나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신 결과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필립 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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