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양육

목회칼럼

사랑하시는 분


얼마 전 열다섯 살 난 딸과 전쟁중인 친구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딸이 피임약을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부모가 갖가지 벌을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딸은

거짓말과 속임수를 일삼으로 역습을 시도했습니다. “이게 다 엄한 것 밖에 모르는 엄마와

아빠의 잘못이에요.” 친구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거실 두꺼운 유리창 앞에 서서 어둠

속을 내다보며 그 애가 들어오기만 기다렸습니다. 속에서 분이 치밀어 올랐지만 나도

탕자의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제일 큰 상처를 받은 건 딸애 자신이겠지요.

선지자의 말씀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분께 상처 주기에 능한 백성 앞에서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으셨던 것이지요.”


친구 목사님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진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딸애가 집에 오자 나는 그야말로 천하에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습니다. 다만

그 애를 두 팔로 감싸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을 뿐입니다. 나는 사랑에 무기력한

아버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탕자의 이야기” 혹은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자식의 부당한 대우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외쳤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교회론을 집필한 후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간단히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사랑하시는 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필립 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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