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양육

목회칼럼

주기도문 속에 길이 있다


예수님은 풍요로운 곳간을 여는 열쇠로 주기도문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자원이 방치되고 있는 것은 주기도문이 너무나 익숙하다는데 있습니다. 온 세상은

신령한 체험에 목말라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 아버지와 날마다 마주 앉아 그 분 앞에

마음을 다 쏟아 놓고, 하나님은 귀 기울여 들으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고

싶은가?” 우리는 두 말할 것 없이 Yes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주기도문 속에 모두 들어 있단다” 우리는 뜻밖의 대답에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문할

것입니다. “주기도문 속에 길이 있다고요?” 우리는 주기도문에 너무나 익숙해서

거기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주기도문 안에

다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사실 간구는 아닙니다. 캘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자녀로 입양되지 않는 한, 누가 감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기도 전에 주님 안에서 갖게 된 자녀의

신분을 자각하려는 ‘부름말’입니다. 주님은 엄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평안의 믿음을 마음에 주시길 구하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은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로서 우리를 모든 불신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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